Day 3 오전 10시 세션이었다.
전날 오후 Rhonda Patrick 세션에서 비타민 D와 오메가-3 결핍 이야기를 듣고, 그 머리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간대다. 오전 첫 강의가 끝나고 짧은 휴식 후 두 번째 강의. 4,000명이 들어가는 메인 홀이 다시 채워졌다.
커피를 한 잔 더 받아 들고 앉았다. 혈관신생 이야기를 들으러 가면서 커피를 마신다는 게 묘하게 어울렸다. 곧 알게 된다.

첫 슬라이드에 어머니 사진이 떴다. 91세, 10년 전 자궁내막암 4기를 면역요법으로 이겨낸 어머니. 강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William Li가 누구인가
William Li는 미국 Angiogenesis Foundation 회장이자 의학자다. 혈관신생(angiogenesis)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Eat to Beat Disease』 저자, TED 강연 누적 조회수 1,000만 회 이상. 음식과 혈관 건강을 분자 수준에서 연결한 인물이다.
이 사람의 특징은 한 줄로 정리된다. 신약 개발에 쓰는 시스템과 동일한 엄밀함으로 식품을 연구한다. 같은 통계, 같은 임상시험 설계. 음식이 어떤 분자를 통해 어떤 세포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약처럼 본다.
세션 제목은 "Food as Medicine, Health to Longevity"였다.
혈관신생이 장수의 공통 분모다
가장 먼저 던진 카드가 혈관신생이었다.
성인의 몸에는 약 6만 마일(약 9만 6천 km)의 혈관이 있다. 일렬로 펴면 지구를 두 바퀴 돈다. 산소, 영양소, 약물, 독소가 모두 이 길을 따라 모든 세포에 도달한다. 단백질을 아무리 먹어도, 운동을 아무리 해도, 혈관이 망가져 있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William Li의 출발점이었다.
이걸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연구팀이 100~103세 백세인의 혈액 단백질체를 67~81세 그룹과 비교했다. AI와 머신러닝으로 모든 혈액 단백질을 훑었더니 86개 경로, 49개 단백질이 차이를 보였고, 그 모든 신호가 혈관 건강을 가리켰다.
"혈관 퇴화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프로그램된 게 아니다."
여기에 친숙한 숫자가 따라붙었다. 100세까지 사는 사람들 중 유전의 영향은 25%, 나머지 75%는 환경·식단·생활습관이다. 2050년이면 지구에 백세인이 400만 명에 이르고, 그 중 절반은 인지 기능이 온전한 채로 산다. 20%는 주요 만성질환을 피한 채로.
통증의학과 진료실에서 만성 통증 환자를 보다 보면 미세순환 문제가 보일 때가 많다. 저등급 염증, 회복 지연, 차가운 손발. Mike Boyle 세션에서 들은 낙상 위험 감소, Rhonda Patrick 세션에서 들은 결핍 교정과 같은 줄기 위에 이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혈관이다.
음식-분자 영양학이라는 처방전
다음은 식품의 구체적인 분자 이야기였다.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 커피, 사과, 배, 아티초크에 들어 있다. 혈관신생을 촉진하고 세포 사멸을 늦춘다. 중간엽 줄기세포를 보호하고, 상처 치유 시 모세혈관 형성을 늘린다. "오늘 아침 커피를 드셨다면 이미 한 회분 드신 겁니다." 그래서 혈관 강의에 커피가 어울렸다.
우르솔산(ursolic acid) — 사과 껍질에 풍부하다. 동물 실험에서 다리로 가는 동맥을 묶은 후 우르솔산을 3주 먹이면 혈관이 다시 자라났다. 단, 매사추세츠 대학교 연구에서 비유기농 사과 껍질에는 살충제가 표피 안쪽으로 20%까지 침투해 씻어도 제거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과 껍질을 먹을 거면 유기농이라는 단서가 따라온다.
베타-D-글루칸(beta-D-glucan) — 보리에 들어 있다. 심장을 포함한 부위에 새 혈관을 만든다. 할머니가 끓여주던 보리수프가 과학적으로 옳았다는 이야기.
폴리페놀 — 다크 초콜릿, 올리브유. 60대 심장병 환자에게 다크 초콜릿 핫초코를 하루 두 컵씩 한 달간 먹였더니 일부 환자에서 순환 줄기세포가 두 배로 늘었고, 혈류 매개 확장 검사상 혈관 탄성이 80% 개선됐다. 별도로 독일 2만 명 코호트에서는 하루 7.5g 다크 초콜릿이 심장병·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것과 연관됐다. 7.5g은 한 조각 정도다.
홍차 — 하루 두 잔, 일주일이면 순환 혈관 줄기세포가 측정 가능하게 올라갔다. 발효된 홍차가 녹차보다 덜 건강하다는 통념이 뒤집힌 셈이다.
오메가-3 — 어류 섭취가 전 세계 코호트에서 전 사망률을 낮추는 것과 연관됐다. 항염증, 항산화, 줄기세포 자극.
용량 기준이 한 번 더 구체적으로 나왔다. 녹차 4~5컵으로 대장암 위험 감소, 조리된 토마토 2~3컵으로 전립선암 위험 약 30% 감소, 딸기 한 컵으로 치매 위험 감소. 여기서 "조리된"이 중요하다. 익혀야 라이코펜이 흡수 가능한 형태로 풀려난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건강하게 드세요"라고만 해온 시간이 떠올랐다. 그 말은 사실상 아무것도 처방한 게 아니다. "녹차 하루 4잔, 익힌 토마토 2~3컵, 사과 껍질째"라는 문장이 진짜 처방에 가깝다.
장수 4대 장내 세균
후반부는 장내 미생물군이었다.
이탈리아·스페인 연구팀이 104세 이상 초고령자의 장내 미생물군을 20대, 65~75세, 99~104세, 105~109세와 비교했다. 백세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된 4가지 세균이 있었다.
- Odoribacter splanchnicus — isoalloLCA를 만들어 면역을 균형 있게 조절. 아스파라거스, 비트, 당근, 렌틸콩, 달걀, 매운 고추로 키운다.
- Christensenellaceae — 스타틴 없이 좋은 콜레스테롤을 올리고, 인슐린 없이 혈당을 낮춘다. 커피, 오트밀, 냉장 보관한 식은 밥(저항성 전분으로 전환), 에다마메, 보라색 감자.
- Christensenella minuta — 내장 지방·중성지방·콜레스테롤을 낮춘다. 그린 바나나, 보리, Lactobacillus reuteri로 발효한 사워도우 호밀빵, 병아리콩.
- Akkermansia muciniphila — 핵심 세균. 혈당을 보호하고 장벽을 지키며 인지 기능에 관여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암 면역요법 효과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됐다. 단, 진행 암이나 면역요법 진행 중인 환자의 식이 변경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매운 고추, 중국 흑식초, 크랜베리, 석류로 키운다.
석류가 왜 들어가는지가 흥미로웠다. 석류의 엘라기타닌이 장내에서 점액 생성을 도와 Akkermansia가 자랄 환경을 만든다. 같은 엘라기타닌이 유로리틴 A로 대사되면 미토콘드리아를 깨우는 신호도 된다.
William Li가 어머니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게 여기였다. 80세에 자궁내막암 4기 진단을 받고, 면역요법 3회를 받았다고 했다. 항암화학요법은 하지 않았고, 식이를 조정해 Akkermansia가 자랄 환경을 만든 것으로 본인은 설명했다. 91세인 지금까지 재발 징후가 없다고 한다. 단일 사례(N=1)이고, 식이가 치료 결과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인과적으로 증명되는 데이터는 아니다. 다만 임상의 입장에서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한 관찰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조리법이 약효를 바꾼다
마지막에 나온 한 슬라이드가 한참 머리에 남았다.
생것이 항상 좋다는 통념이 식품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보라색 고구마를 화씨 375도(섭씨 약 190도)에서 45분 구우면 안토시아닌 폴리페놀이 생것의 88배로 증폭됐다. 찐 것조차 생것보다 55%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안토시아닌은 전분 분자에 단단히 묶여 있고, 열이 그 결합을 풀어준다.
토마토가 익어야 라이코펜이 풀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같은 식재료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
여기서 한 번 더 나왔다.
"음식이 약이라면, 우리는 조리법까지 처방해야 한다."
한국은 어디쯤인가
한국 식단을 생각하면서 들었다.
유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녹차 — 일상 음료다. 김치, 청국장, 된장 — 발효식품 노출량은 미국보다 많다. 매운 고추 — Akkermansia를 키우는 식품이고 한국 식탁의 기본이다. 흑식초까지는 아니어도 식초 사용은 익숙하다. 식은 밥을 다시 데워 먹는 문화도 있다. 저항성 전분 관점에서 한국이 이미 하고 있던 것이다.
불리한 부분도 있다. 한국 사과는 껍질을 깎아 먹는 게 일반적이다. 우르솔산이 거기 있는데 통째로 버려진다. 거기에 한국 사과는 대부분 비유기농이다. 껍질째 먹으라는 권고가 그대로 옮겨오기 어렵다. 다크 초콜릿 7.5g과 홍차 두 잔 같은 항목은 일상 식단과 거리가 있다.
가장 거리가 있는 항목이 "찬밥 먹기"다. 한국에서 식은 밥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상차림이라는 정서가 있다. 그런데 데웠다 식힌 밥, 식은 감자가 Christensenellaceae를 키운다는 이야기는 거꾸로 보면 한국이 원래 하고 있던 일이기도 하다. 김밥 속 찬밥, 도시락 밥. 프레임을 바꾸면 거부감이 줄어들 것 같다.
통증의학과 의사로서 가져가는 것
만성 통증과 혈관 건강은 자주 같은 줄기 위에 있다.
상처 회복이 더딘 환자, 만성 근막통, 차가운 손발을 호소하는 환자, 당뇨 동반 신경병증 환자. 이들에게 미세순환은 통증만큼이나 핵심이다. 혈관 엔도텔리얼 세포가 충분히 살아 있어야 영양소도 약물도 도달한다.
Q&A에서 한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음식으로 혈관신생을 자극하면 종양 혈관화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황반변성이나 관절의 병적 혈관 증식은요?"
William Li의 답이 이랬다.
"몸은 항상성 스위치로 가득 차 있다. 약은 그 스위치를 강제로 누른다. 그래서 부작용이 생긴다. 음식은 공을 살짝 굴려 제자리에 들어가게 도울 뿐이다. 음식으로는 종양 쪽으로 혈관을 키우지 않는다."
이 답을 환자에게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사과 껍질을 드시면 종양 혈관도 자라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환자에게, 약리적 차단과 식품 기반 자극이 다르다고 설명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바꾸고 싶어진 것이 두 가지다.
환자에게 건네는 식단 권고 한 줄을 바꾸기로 했다.
- 이전: "건강하게 드시고 채소 많이 드세요."
- 이후: "녹차 하루 3~4잔, 익힌 토마토 자주, 사과 드시면 깎지 말고 잘 씻어서 껍질째."
이건 약 처방이 아니라 일상 식단 조언이다. 약물 치료를 대체하는 권고가 아니라 그 위에 얹는 정도라는 것을 환자에게 같이 전해야 오해가 없다.
문진 항목도 손볼 생각이다. 차 섭취 빈도, 발효식품 다양성(김치·청국장·식초·매운 고추), 사과 껍질 여부, 식은 밥과 감자 활용 여부 — 이 네 가지를 진료실 대화 안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어보려고 한다. "사과는 깎아 드시나요, 껍질째 드시나요?" 같은 질문이 통증 환자에게 갑자기 나오면 어색하니, 식이를 묻는 다른 흐름 끝에 슬쩍 붙이는 정도가 적절할 것 같다.
다크 초콜릿 7.5g을 진료실에서 어떻게 설명할지는 아직 결론이 안 났다. "한 조각 정도"라고 말하면 될까, 굳이 말하지 않는 게 나을까. 환자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강도를 봐야 알 것 같다.

세션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판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색깔을 세고 있었다. 녹색, 보라, 빨강, 주황. William Li가 "여러 색깔을 먹는 것"을 강조한 이유가 분자 수준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강의 한 번으로 식판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은 흔치 않다.
통증의학과 의사가 식이요법을 공부할 이유는 거기에 있다.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일과, 환자의 혈관을 살려두는 일은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음식으로 혈관신생을 자극하면 암세포 혈관도 자라지 않나?
William Li가 Q&A에서 직접 다룬 질문이다. 그의 답은 항상성 스위치 개념이었다. 약은 시스템을 강제로 켜거나 꺼서 부작용을 유발하지만, 음식은 몸이 이미 가진 자기 조절 기능에 원료를 공급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식품 기반 혈관신생 자극이 종양 혈관화나 황반변성, 병적 관절 혈관 증식으로 이어진 임상 데이터는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 다만 진행 중인 암 환자나 면역요법 진행 중인 환자는 담당 의료진과 식이를 상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Akkermansia muciniphila를 키우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William Li가 제시한 4가지 식품은 매운 고추, 중국 흑식초, 크랜베리, 석류였다. 한국 식단 기준으로는 매운 고추가 가장 접근하기 쉽다. 석류 폴리페놀의 약 80%가 씨 주변이 아닌 껍질(rind) 부분에 있어, 껍질을 함께 추출한 주스 제품이 함량 면에서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청국장이나 김치 같은 발효식품, 식초류도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Akkermansia 자체는 혐기성이라 일반적인 프로바이오틱 보충제로 직접 보충하기 어렵고, 장내 환경을 키우는 식품 전략이 우선이다.
사과 껍질을 꼭 유기농으로 먹어야 하나?
William Li는 매사추세츠 대학교 연구를 인용해 비유기농 사과 표피에 살충제가 약 20% 침투해 있고, 일반적인 세척으로 제거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르솔산을 위해 껍질을 먹는 거라면 유기농 표시가 있는 제품이 권장된다. 사과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살구, 건포도, 건크랜베리에도 우르솔산이 들어 있어 트레일 믹스 형태로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식단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션 내용을 한국 맥락으로 옮기면 우선순위는 이렇게 잡힌다. 녹차의 일상 음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William Li가 다룬 분자는 녹차의 EGCG·홍차 폴리페놀이었다), 매운 고추와 식초·발효식품 섭취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챙기는 것, 사과를 먹을 때 깎지 않고 잘 씻어 껍질째 먹는 것(가능하면 유기농), 그리고 토마토를 익혀 먹는 것이다. 다크 초콜릿이나 홍차 두 잔처럼 새로운 습관을 추가하기보다, 이미 식탁에 있는 항목을 조리법과 양 측면에서 다듬는 것이 현실적이다.